2021.01.28
출처 -서울특별시도시재생지원센터(https://surc.or.kr/changes/543)
글_박예하(빈빈) 사진_이예린(일오스튜디오) 사진 제공_서울도시재생사회적협동조합
서울 도시재생기업(CRC), 서울도시재생사회적협동조합
찾고 싶은 공간, 살고 싶은 동네,
함께 움직이는 따뜻한 도시
지난해 말, 회현동과 중림동, 서계동을 아우르는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 사업이 마무리되었다. 현장센터는 문을 닫았지만, 마중물로 올려진 도시재생 사업을 지역 전문가와 주민들이 함께 이어가고 있다.
※ 도시재생기업(CRC)_ ‘Community Regeneration Corporation’의 약자로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설립된 단체(법인)가 중심이 되어 다양한 지역 문제를 해결하며, 지역에 필요한 서비스를 생산, 공급하는 기업
서울역 뒤편. 아기자기한 카페와 건축사무소들이 하나 둘 들어서고 있는 매력적인 골목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따라 고개를 오르면, 탁 트인 서울을 굽어보는 오래된 주택들 사이에 조성된 도시재생 앵커(주민공동이용시설)들을 만날 수 있다. ‘은행나무집’, ‘감나무집’, ‘빌라집’. 이 중 하얀색 건물의 ‘빌라집’에 서울도시재생사회적협동조합이 자리를 잡고 있다. 서울역 일대의 도시재생을 이끌고 있는 조합의 이종필 이사장은 도시재생기업의 본질에 대해 치열하게 사유하고 탐구하며 언제나 한 발짝 이후를 내다보고 있다.
CRC의 효용을 가장 앞서 고민하다
2017년, 서울역일대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는 세 명의 코디네이터가 주축이 되어 CRC 준비팀을 만들었다. 도시재생 기업이라는 개념이 지금보다 낯설 때 이들이 제일 먼저 찾은 것은 주민이었다. “CRC가 뭔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저희가 찾아낸 설명은 ‘도시재생지원센터 이후를 준비하는 것’이었어요. 서울역 일대 주민들이 도시재생지원센터의 효용에 대해서는 많이들 공감하고 있었거든요. 주민들을 찾아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살가운 행정'을 반긴 분들이 많았죠. 그러다 보니 센터가 없어지는 걸 아쉬워하셨어요. 센터가 계속 있을 수 없으니 같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이후를 준비하자고 했더니 흔쾌히 응해준 주민들이 있었어요.”
서계동, 회현동, 중림동을 포괄하는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사업은 다른 사업지에 비해 광범위하다. 각자의 특징을 가진 지역이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준 주민이 많았던 이유는 하나다. 대를 이어 한 곳에 살며 지역에 뿌리를 두고 정을 붙인 주민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회현동과 중림동은 3대가 사는 가구도 많아요. 그만큼 오래 거주한 토박이가 많은 동네예요. 그래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지 않고, 안정성을 지니고 있죠. 전반적으로 주민들의 동네에 대한 애착이 크다 보니 주민 역량도 쉽게 올라가고 적극적인 분들이 등장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편 ‘빌라집’, ‘감나무집’ 등이 위치한 서계동은 조금 다른 독특한 성격을 띤다. 입지가 워낙 좋은 터라 꺼지지 않는 재개발 이슈로 약 15년 동안 몸살을 앓고 있다. 그렇다 보니 낙후된 저층 주거지임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매매가는 평당 2천5백만 원부터 1억 원을 호가한다. “재개발 논의가 계속 들끓는 와중에 재생이 개발의 반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 보니 좋은 재생사업 계획들이 있었는데 진행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 아쉽죠.” 그러나 이 이사장은 세 개 동의 각기 다른 성격이 서로를 견제하기보다는 상호 균형을 맞춰 시너지가 나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의 ‘내 동네'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서울역 일대’라는 지역 전체를 포괄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2019년 거점 시설 운영을 시작할 때 오프닝 강좌 ‘남촌주담’을 열었다.
내년 사업 목표는 수익률 15%
그렇다면 서울도시재생사회적협동조합이 이 견고하지만 특수한 지역에서 최우선으로 두고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 “도시의 문제는 장기적으로 공간의 문제가 될 겁니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곳 중 하나도 호텔이나 에어비앤비잖아요? 공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곧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로 직결될 수밖에 없어요.”
2019년 1월 총회를 통해 출범한 서울도시재생사회적협동조합의 첫 번째 과제 역시 도시재생 사업으로 조성된 거점 시설의 운영·관리였다. 복합문화공간 ‘중림창고’와 카페 ‘계단집’, 마을관리사무소 ‘빌라집’ 등 위탁과 운영을 맡은 공공공간은 8곳. “19년 11월 28일에 거점 공간들을 정식으로 열었는데, 지난해 2월부터 코로나 국면이 시작돼서 사실 1년을 그냥 보냈어요. 그래서 올해가 거점 공간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원년이라고 생각하면서 ‘코로나19라는 특이점’이 생긴 시대의 공공공간 운영은 어때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은행나무집’의 경우 1인 오피스로 임대를 해요. 코로나19 시대에 일할 곳이 필요한 사람들, 공간 문제를 가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공간으로 쓰일 수 있게 하는 실험을 해보는 거죠.”
이런 대관과 공간 운영은 서울도시재생사회적협동조합 수익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2021년 사업 목표를 ‘수익률 15%’로 잡고 공간과 관련해서는 ‘4070’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위탁받은 공간은 자립도 40%, 거점 공간은 70%를 이루는 것이다. 또 하나의 큰 수익 모델은 마을 관리다. “생협에서 조합원이 돈을 내고 믿을 수 있는 식재료를 살 수 있듯이, 저희는 주택관리 협동조합을 만들려고 해요. 가입비 2만 원을 내면 집에 대한 기본적인 관리를 해주고 다양한 서비스도 회원가로 제공하는 거죠. 그걸 한 50호 정도 모집하고 집수리 사업을 10건 정도 할 계획이에요.”
복합문화공간 '중림창고'에서는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계단집’에서 열렸던 ‘주민 바리스타와 함께하는 드립 체험’
중요한 결정 사항이 생기면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워크숍을 진행한다.
결국 CRC는 도시의 물리적 환경이나 공간을 다루는 비즈니스를 해야한다는 게 이종필 이사장의 지론이다.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공공공간 운영, 마을관리사업, 도시재생활성화계획 관련 사업, 이 세 가지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 “일반적인 지역 커뮤니티 기반의 기업과는 다른, 도시재생사업 전반을 쭉 거쳐온 기업을 CRC로 육성해야 해요. 도시재생기업은 도시재생사업 과정을 통해 손으로 파낸 옥토에 씨 하나 뿌려 겨우겨우 키워내는 나무와 같아요. 다른 곳에 있던 나무를 가져다 심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에요.” 이렇게 잘라 말하면서도 그는 기꺼이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새로 CRC 해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든지 이야기해줄 수 있어요. 저희의 경험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보편적인 내용이 있거든요. 그걸 공유하고 싶습니다.”
CRC 역할은 주민과 협력하고 주민에게 방향을 주는 것
서울도시재생사회적협동조합 이종필 이사장
실제로 5년 안에 조합을 만들어 독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카페 ‘계단집’에서는 운영이 아닌 경영을 하고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맡을 수 있는 주민들을 육성하고 있다. ‘사랑채’와 ‘감나무집’을 성공적으로 관리한 주민 공간 매니저들을 각각 회현동과 서계동 공간 매니저로 올해 채용하기로 했다. “주민, 직원, 조합원이 헤어지고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면서 옥석이 가려지기도 해요. 결국 기반이 있고 안정성이 있으니까 저희가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해요. 잡음이 생기는 일도 많지만 주민들, 이사님들의 신뢰가 있기 때문에 도와달라고 하고 손 내밀면서 서로 지지해주는 거죠.”
이종필 이사장의 임기는 올해 2월 끝나지만, 연임이 가능하다. 다시 하겠냐고 묻자 ‘당연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제 좀 알 것 같으니, 한 걸음은 더 가봐야죠.” 1년을 거치며 얻은 깨달음으로 올해 조직도 개편하고 비전 작업도 새롭게 했다. 이들이 정한 새로운 비전은 ‘찾고 싶은 공간, 살고 싶은 동네, 함께 움직이는 따뜻한 도시'. 이종필 이사장과 서울도시재생사회적협동조합의 살가운 진심이 슬로건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