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3
출처 -서울특별시도시재생지원센터(https://surc.or.kr/changes/528)
글_원영인(빈빈)
사진_모현종(일오스튜디오)
사진 제공_369마을 사회적협동조합
서울 도시재생기업(CRC), 369마을 사회적협동조합
“CRC로 성공하려면 전문가가 돼야 해요”
서울성곽길에 맞닿은 369마을이 달라졌다. CRC를 통해 오래된 동네를 예술마을로 변화시키고 있는 369마을사회적협동조합 이상훈 대표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도시재생기업(CRC)_ ‘Community Regeneration Corporation’의 약자로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설립된 단체(법인)가 중심이 되어 다양한 지역 문제를 해결하며, 지역에 필요한 서비스를 생산, 공급하는 기업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 번화가를 지나쳐 골목 안길에 이르면 높다란 계단을 마주하게 된다. 눈 딱 감고 오른 이 계단 끝에는 생경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낙산을 지나 흥인지문까지 이어진 서울성곽 길이다. 성곽을 따라 난 산책로와 마을 진입로가 만나는 모퉁이에는 ‘카페 마실’이 있다. 툇마루에 앉아 아파트와 주택이 어우러진 서울의 전망을 바라보며 차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곳. 더 걷다 보면 ‘369마을’ 이름표를 단 마을 사랑방과 지역 작가들이 레지던스로 사용하고 있는 예술공방, 전시가 열리는 예술터도 있다. 무려 4개의 주민공동이용시설을 운영하는 369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은 일찌감치 지역관리형 비즈니스 모델을 마을에 정착시켜온 지역사회 협동조합이다.
서서히 주민의 마음을 얻다
좁은 골목 언덕길을 따라 단층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369성곽마을은 ‘삼선 재개발 6구역’으로 지정돼 재개발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의지로 2013년 재개발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지역이다. 369마을 사회적협동조합 이상훈 대표는 2012년 고려대학교 도시계획 및 설계연구실에서 실시한 연구사업을 통해 이 지역과 연을 맺었다. 연구사업은 재개발 해제 지역의 기반시설 확충을 위해 진행된 주거환경관리사업의 일환이었다. 지역을 연구할수록 그는 지속가능한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물리적 환경개선 외에 또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연구를 하면서 ‘커뮤니티 비즈니스’ 개념을 알게 됐어요. 낙후된 지역의 삶을 개선한다는 목표는 같지만, 주민이 주체가 되어 사업 방향성을 결정하고 운영한다는 것이 주거환경개선사업과 다른 지점이었죠.”
주거환경관리사업 추진 과정에 이런 커뮤니티 비즈니스 개념의 주민 주도형 방식을 적용하고자 했던 그는 1년짜리 환경개선 사업 기간을 3년으로 늘렸다. 공사보다 ‘주민들과 함께 어떻게 마을을 만들어갈지’에 대한 방안을 먼저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300여 가구를 직접 찾아갔어요. 얼굴을 익히고 이야기를 나누며 주민들의 마음을 조금씩 열었지요. 마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달려가고, 마을공동체사업 공모도 하고요.” 현재 도시재생 사업의 준비단계인 희망지사업을 시행한 셈이다. 이런 노력 끝에 재개발 해제 3년째인 2016년 369마을운영위원회가 탄생했다. ‘369마을’이라는 이름도 ‘삼선 재개발 6구역’의 첫소리를 따서 주민들이 직접 지은 것이다. 보행로와 계단, 골목길을 정비하고 30~40채에 이르는 집을 수리하면서 공동체 활동도 함께 진행했다. 그렇게 주거환경관리사업이 마무리되던 2018년 말, 앞서 얘기한 4곳의 주민공동이용시설이 준공됐다.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본격적인 시작
369마을의 새로운 숙제는 주민공동이용시설 운영이었다. 이를 위해 2018년 7월, 369마을주민공동체 운영회를 만들었다. 운영회는 이듬해 겨울까지 일주일에 두 번씩 모여 도시재생 관련 외부 강의도 들으며 ‘369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했다. 협동조합은 369마을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인 ‘성곽’을 부각시킬 수 있는 4개 공간을 마련하면서 운영 주체는 고르게 나눴다. ‘369 사랑방’은 마을 부녀회가 운영을 맡아 식당, 커뮤니티, 독서 모임 등의 대관 업무를 하고 , 성곽 산책자들이 쉬어가는 ‘카페 마실’은 협동조합 사무국 직원이 운영한다. ‘예술공방’에서는 입주작가들이 지역 예술을 탐구하고 ‘예술터’에서는 지역 문화 기반의 문화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전시된다. 주민공동이용시설의 전체적인 운영은 이 지역에 오래 거주한 주민을 중심으로 한 369마을 주민공동체운영회가 맡는 것으로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했다.
성곽 앞 외부인과 마을 주민의 휴식처인 ‘카페 마실’
369마을이 있는 성곽길. 길을 걷다보면 카페마실을 만날 수 있다.
지역예술가들의 레지던스로 운영 중인 ‘369 예술공방’
CRC가 생산성과 수익성을 갖고 지속할 수 있으려면 젊은 생산 주체가 필요한 법. 다행히 369마을은 오래된 동네이지만 ‘초역세권’인데다 인근에는 성신여대와 한성대 등 학교도 많아서 청년 인구도 많다. 그래서 탄생한 슬로건이 ‘주민이 주체가 되고, 청년이 참여하고, 대학이 지원한다’였다. 지난해까지는 한성대와 연계했고, 올해는 지역의 문화예술협회들과 관계를 맺은 덕분에 청년 참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2년간 운영을 하며 369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은 어느 정도 자생력을 갖췄다. 사랑방의 마을식당과 커뮤니티 대관, 카페 마실의 음료 판매가 자체적으로 운영 가능한 수준의 수익을 내고 있으며, 입주작가들에게 받는 임대료나 도시재생투어 프로그램, 후원금 등도 보조 수입원이다.
이상훈 대표에게 369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이 건실하게 자리 잡게 된 비결을 물었다. 그의 첫마디는 ‘천천히’였다. 사업 시행에서 속도에 대한 조바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 “사업을 7년 내내 함께해온 인력이 7명이나 됐어요. 이들이 구심점을 잡은 상태에서 우리는 갈등이 생기면 그걸 서둘러 봉합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마을 사업을 하는 이 모두가 돈벌이나 성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마을과 함께하는 행복한 나의 삶을 위해 출발한 거잖아요. 성과를 목표로 서두르면 ‘득’이 생길 수는 있지만, 관계에서 오는 ‘덕’은 쌓이지 않게 되죠.”
마을 부녀회에서 운영 중인 ‘369마을 사랑방’
지역 작가 및 지역 미술협회의 작품을 전시하는 ‘369 예술터’
“마을 사업을 하는 이 모두가
돈벌이나 성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마을과 함께하는
행복한 나의 삶을 위해 출발한 거잖아요.
성과를 목표로 서두르면 ‘득’이 생길 수는 있지만,
관계에서 오는 ‘덕’은 쌓이지 않게 되죠.
지역 자산을 브랜드화하다
369마을은 문화예술 관련 인적자원도 풍부하다. 대학로와 가까운 덕에 연극이나 영화 관계자, 소설가, 예술가들이 많이 거주한다. 덕분에 369마을의 ‘예술터’와 ‘예술공방’은 전시나 무대가 필요한 지역의 문화예술협회와 상생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약 7년간 도시재생 사업을 펼쳐온 이상훈 대표의 개인적 감상에 따르면 이 지역의 가장 큰 문화 자산은 ‘마을 어르신’들이라고. 1970년대부터 구릉지에 터를 잡고 살아온 이 한국 현대사의 주인공들의 이야기 속에는 서울 생활 변천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민들의 이야기는 문화 콘텐츠로 재탄생되고 있다. 입주작가들은 마을 사랑방 ‘수요밥상’ 모임에서 매주 만나는 할머니와의 이야기를 일러스트레이션, 도예, 그림 등으로 담아내고 있다. 성곽마을 여성의 일생을 주제로 한 연극도 열렸다.
지난 10월 열린 ’성곽여가-풍류‘는 지역 문화 콘텐츠를 한자리에 모은 첫 사례다. 369마을 예술공방 입주작가들의 전시와 극단 예모리의 버스킹 공연이 열린 것이다. 카페 마실 앞마당에서 열린 국악과 전통무용 공연은 코로나19 사태로 답답한 일상을 보내던 주민들과 산책자들을 위로했다. 369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은 ‘성곽여가-머물다’라는 답사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이상훈 대표와 마을 주민이 들려주는 도시재생 이야기를 듣고, 사랑방에서 마을부녀회에서 마련한 식사를 하고, 카페 마실에서 차를 마시고, 예술터에서 전시를 보고, 입주작가와 함께 도자기 만들기 같은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369마을의 다양한 생산 주체가 만든 콘텐츠를 총체적으로 경험하는 코스인 것. ‘성곽여가-머물다’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주말 힐링&교육 프로그램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성곽여가-풍류>에서 국악&전통무용 버스킹 공연이 펼쳐졌다.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 예술장터
입주작가가 마을 사람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재해석한 ‘369마을 이야기’ 전시
7년간의 도시재생 사업 경험을 인정받아 369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은 2019년 CRC로 선정됐다. 꾸준히 진행해오던 마을공동체 사업은 CRC 선정 이후 어떻게 달라졌을까? “도시재생기업 지원금 덕분에 정규 인력을 채용할 수 있게 됐고, 사업을 확장할 힘을 얻게 됐지요.” 현재 사무국에는 4명의 활동가가 활동 중이다. 기존 조직에 간사와 문화예술 큐레이터를 충원했다. 주민들이 담당했던 역할이 사무국으로 이임되며 조직 운영이 더욱 원활해졌다. 마을 사업 관리를 비롯해 지역 자산 컨텐츠화 사업이 추동력을 얻었다.
이상훈 대표에게 이제 막 CRC를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그의 대답은 조합 운영 방식에 국한되지 않았다. “저는 2012년부터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공부했고, 건축회사 ‘이상도시’를 운영할 만큼 지역 기반 비즈니스에 잔뼈가 굵었어요. 제가 지역 비즈니스의 ‘프로’였기 때문에 CRC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봐요. CRC를 목표로 하는 협동조합은 이런 전문가 의식을 꼭 갖춰야 해요. 내부 공동체에 사업 수행 능력이 없다면 외부 전문가 섭외도 대안이 될 수 있어요. 또 다른 조직과 연계하는 방안도 마련하면 좋아요. 우리는 미술협회와 한성대 등과 연계한 덕분에 청년이 많이 유입될 수 있었거든요.”
369마을 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 활동가들과 이상훈 대표
이상훈 대표가 처음 주거환경관리사업 연구를 위해 발을 들인 ‘삼선 재개발 6구역’이 마을 주민이 주체가 되어 운영하는 ‘369마을’로 변모하는 사이, 그는 아예 이곳에 터를 잡고 주민이 됐다. 이제 이상훈 대표의 꿈은 ‘369마을의 대표’가 되는 것이다. “협동조합 활동가들 가운데 더 많은 ‘이상훈’이 생기면 좋겠어요. 저처럼 오지랖이 넓되 저보다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이들이 늘어나서 마을 사업을 운영하고, 저는 주민 관리자로서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과 단단하게 결합돼 굴러가는 협동조합’은 갈수록 그에게 더 큰 기대를 품게 한다. 그에게 369마을이 어떤 의미인지 묻자 그는 한 주민이 해준 말로 대신했다. 이상훈 대표가 꿈꾸는 이상 도시, 그리고 도시재생 사업의 목적이 모두 담겨 있는 말이다. “저는 그동안 도시개발에서 배제된 피해자라고 생각했어요. 남들처럼 아파트에 살지 못해 도태된 사람이라는 열등감이 있었지요. 그런데, 369마을 사회적협동조합과 인연이 되어 한 달에 한 번씩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마을 사업을 기획하고 참여하면서 나의 존재감이 자랑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아파트에 살면 이렇게 다 같이 마을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369마을 사회적협동조합
사업지 삼선동 설립일 2019. 4. 5 조합원 15명 CRC 선정일 2019. 5. 29 CRC 유형 지역관리형 업종 서비스업, 소매업 주요 사업 마을탐방 프로그램 운영, 지역특산품 유통 판매, 문화예술 콘텐츠 기획 및 운영 실행, 마을공동체 활성화 및 도시재생 관련 위탁사업
해결하고자 하는 지역 문제 재개발 해제 이후 지역 정체성 확립 및 주민간 공동체 의식 회복. 청년과 오래된 주민이 협력해 운영하는 사업 모델 창출.
해결방법
‘카페마실’ ‘예술공방’ 등으로 성곽과 문화예술인 등 마을 자산을 브랜드화하고 마을부녀회가 주도하는 ‘수요밥상’을 통해 주민 교류 활성화. 도시재생 마을 투어 프로그램이나 지역 주민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전시, 공연 등을 통해 시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