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서울특별시도시재생지원센터(https://surc.or.kr/changes/388)
글_원영인(빈빈) 사진_이현실(15스튜디오)

(사진 왼쪽부터) 배동기, 이동숙
세대와 문화를 공유하는 해방촌의 부엌__해방참
지난 6월, 해방촌 도시재생지원센터 1층에 문을 연 공유부엌, ‘해방참’. 동네 이름 뒤에 ‘끼니’와 ‘때’를 뜻하는 ‘참’이 붙어 어감이 정답다. 12명 정도가 함께 모여 식사할 수 있는 테이블과 조리대를 갖춘 20평 남짓한 이 공간의 시작은 작년 10월 해방촌 도시재생지원센터 마을배움터에서 열린 ‘공유부엌 수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유 부엌에 관심을 가진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교육이 진행되었고, 올해 초 수업에 참여한 이들이 주민공모사업에 공유부엌 운영프로그램을 신청하여 최종 선정되었다. 일련의 과정을 차근차근 거쳐 현재 해방참의 기획과 운영을 맡고 있는 해방촌 주민 배동기, 이동숙, 하성자 씨. 그들은 이곳에서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Q. 해방참 운영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배동기_ 해방촌에 산 지는 40년쯤 됐다. 어르신 봉사를 위해 레크레이션 등을 배우고 나의 재능도 기부 하면서 즐겁게 지내다 작년 해방촌 도시재생지원센터 배움터에서 열린 ‘공유부엌 운영’ 수업을 듣게 되었다. 해방참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그간 배운 것들을 지역 사회에 돌려줄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동숙_ 배동기 선생님과 반대로 나는 완전 해방촌 ‘새내기’다. 해방교회 앞에서 떡볶이 가게를 운영한 지 8년째인데, 이 숫자로는 동네에서 명함도 못 내민다. 맨 처음 가게를 오픈하고 주변 어르신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같이 국수도 말아먹고 하다 어느새 우리 가게가 동네 사랑방이 되었다. 그렇게 6년 전부터 ‘마을밥상’을 운영하고 있다. 취지가 좋다고 용산구청의 지원도 받았다. 하지만 밥상을 꾸준히 이어가려면 무엇보다 공간이 필요했다. 내가 주민공모사업에 공유부엌을 신청한 이유다.
Q. 해방촌에 공유부엌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했나? 배동기_ 예전에는 이웃이 서로의 집을 오가며 모이곤 했는데, 요새는 그런 문화가 사라졌다. 동네에 모일 장소도 딱히 없다. 무엇보다 지역 행사를 할 때면 음식 준비할 공간이 부족해 주민센터 주차장 앞이나 신흥시장 안에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음식을 준비하곤 했다.
이동숙_ ‘마을밥상’을 운영하면서 밥상이 주민을 연결해주는 좋은 매개체라는 걸 느꼈다. 다른 지역과 달리 문화와 세대가 다양한 해방촌이기에 ‘연결’은 더욱 필요하다. 추석에 다문화 가정 학생들과 함께 송편을 만들어 어르신들과 나눠 먹기도 했다. 나이지리아와 케냐 출신 학생들을 위한 한국어 공부방에서도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었더니 분위기가 더 좋아지더라.



Q. 해방참을 만드는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이동숙_ 작년에 마을배움터에서 ‘공유부엌’ 수업을 들었고, 올해 초 공유부엌에 대한 공간과 프로그램을 기획해 주민공모사업에 응모하여 최종 선정됐다. 현재 나는 해방참에서 운영하는 마을 행사들을 기획하고 행정 관련 일 등을 맡고 있다. 해방참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주민 참여가 중요한데, 이 부분에서는 이 지역에 오랜 연고가 있는 배동기 선생님과 하성자 선생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두 분은 시설 관리와 운영을 담당하신다.
배동기_ 올봄 서울에 있는 여러 공유주방을 견학했다. 연희동에 있는 연남장과 서울역 근처 감나무집이 인상 깊었다. 베이커리를 전문으로 하는 주방이나 강사를 초빙한 요리 수업 등을 보면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전에는 공유부엌을 마을 행사 장소로만 생각했는데, 공간 대여나 요리 강좌, 간식 판매 등 할 수 있는 사업이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됐다. 여러 공유주방을 모델 삼아 부엌 형태를 구상했고, 주민과 함께 사용하기 위한 규칙과 물품 관리 방법 등을 정리했다.



해방참의 이름부터 공간 구성, 집기품목, 관리방법에 이르기까지 주민협의체 주민들과 함께 고민해 완성해 나갔다.

Q.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개소식은 미뤘지만 6월부터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해방참에서는 어떤 행사들이 열렸나? 이동숙_ 먼저 두 차례에 걸쳐 지역 독거 노인과 다문화 가정 어린이를 위한 점심 도시락 나눔이 있었다. 처음엔 40인분, 두 번째엔 60인분을 만들었다. 7월 14일에는 인근 경로당 어르신들과 보성여고 학생들이 함께하는 열무김치 담그기를 진행했다. 초복에는 지역 독거 노인을 위한 삼계탕 나눔 행사도 열었다.
Q. 제대로 된 공유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니 감회가 남달랐겠다 이동숙_ 경로당 어르신들과 보성여고 학생들이 함께 했던 열무김치 담그기가 인상적이었다. 장소가 생기니 대화가 많아지더라. 어르신은 아이들에게 자기만의 비법을 가르쳐주시고, 아이들도 재밌어 하면서 잘 따라했다. 여러 봉사자들이 한데 모여서 행사를 하니 훨씬 재미있고 보람찼다.


해방참 오픈 후, 두 차례 진행된 점심도시락 나눔 행사

보성여중 학생과 마을 어르신이 함께한 열무김치 담그기는 훈훈한 세대간 소통의 장이었다.
Q. *도시재생기업(CRC)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하반기 서울시와 서울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진행될 서울 도시재생기업(CRC) 공모 사업을 준비 중이라고 하던데. 이동숙_ 현재의 해방참 행사는 주민공모사업을 통해 받은 지원금으로 운영되고 있어 참여자들은 자원봉사 개념으로 일하고 있다. 이윤을 내는 기업으로 나아가야 해방참도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자력으로 운영하고, 일한 만큼 활동비도 가져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프로그램과 아이템을 준비하여 사업성을 높여야 한다. 쿠킹 클래스, 도시락 싸기, 반찬 케이터링 같은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고 있다.
Q. CRC로서의 자립을 위한 구체적인 운영 계획이 궁금하다. 배동기_ 우선 대관이 있다. 올해 말까지는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받기 위해 무료로 시범 운영하지만, 내년부터는 소정의 금액을 받고 공간을 대관할 예정이다. 반가운 건, 해방참이 요리 촬영 장소로 쓰여진다는 것. 치매 환자를 위한 요리를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 ‘아같사 TV’에서 8월 13일부터 올해 말까지 해방참을 예약했다. 이 외에도 ‘해방촌 레시피’라고 주민들이 자기만의 레시피를 공유하는 요리수업도 계획하고 있다. 이동숙_ 음식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주민들이 만들었다고 품질에 대해 양해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고민이 많다. 다른 한편으로는 게스트하우스가 많은 해방촌만의 지역적 특색을 활용해 외국인 대상으로 한국 음식 체험 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다.
Q. 해방참을 운영하면서 우리 동네 해방촌에 어떤 변화가 생기기를 기대하나? 배동기_ 여전히 52년생 ‘해방둥이’가 많은 해방촌에서 40년밖에 살지 않은 난 막내다. 모르는 것도 할 일도 많다는 말이다. 동네 일이라면 빠지지 않고 참석해왔는데, 올해는 주민협의체 일도 맡았다. 나의 다방면의 활동으로 해방촌 도시재생사업과 우리 마을 공유부엌에 주민들의 참여가 많아지면 좋겠다. 이동숙_ 60대 이상 어르신들을 외국인이 운영하는 경리단의 와인바에 모시고 간 적이 있다. 그런데 그분들이 안 되는 영어에도 바디랭귀지로 소통하면서 너무 즐거워하시더라. 경험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소통 자체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마을 어르신들에게는 여전히 ‘도시재생’이라는 개념이 낯설다. 내 역할은 이곳 어르신들과 새로 유입되는 젊은 친구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다. 이제 해방참이라는 공유부엌이 생겼으니 서로에 대해 새롭게 체험할 거리가 많아지지 않을까? 따뜻한 식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더 많은 세대와 다양한 문화가 서로를 경험하고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