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서울특별시도시재생지원센터(https://surc.or.kr/changes/431)
글 | 원영인(빈빈)
사진 | 류주엽(일오스튜디오)
고층빌딩과 아파트로 빽빽한 서울시 중구. 그 동쪽 끝 신당5동에는 세월이 비껴간 듯 낮은 주택들이 모여 있다. 90년대부터 인구가 줄어 현재 인구는 1만 명 정도. 그런 신당5동이 도시재생 활성화지역으로 선정되며 기대감으로 들썩인다. 침체된 동네에 활기를 불러온 주역, 신당5동 도시재생의 공로자들을 만났다.
2020년 서울형 ‘도시재생 활성화지역’에 선정된 신당5동
우리가 꿈꾸는 도시재생의 미래 "모두 다 함께 오래오래 즐겁게 살 수 있는 동네를 만들고 싶어요"
상가주택 2층에 위치한 신당5동 거점 공간 ‘희망이음’. 현관문을 열자 더운 공기가 ‘훅’ 몰려온다. 한창 회의 중인 주민들이 뿜어내는 열기다. 이들은 도시재생활성화지역으로 선정된 이후 더욱 바빠졌다. 오늘 회의의 안건은 곧 열릴 골목 축제의 콘텐츠를 정하는 것. 그동안 모은 주민들의 의견을 추려서 코로나19 사태로 침체된 신당5동에 활기를 불어넣을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회의에는 도정아, 박오순 주민 대표제안자, 문윤경, 백영숙 주민 활동가, 조경희, 류한서 코디네이터가 참석했다. 지역의 새로운 변화를 이끈 이들에게 물었다. 신당5동이 도시재생사업지로 선정될 수 있었던 원동력, 그리고 이들이 꿈꾸는 미래에 대하여.
신당5동과 도시재생의 만남
마을문고 총무, 부녀회, 통장, 상인회 회장. 도시재생활성화사업을 추진한 이들 주민의 타이틀이다. 이들은 이미 2014년부터 ‘소나힐(소통과 나눔의 힐링캠프)’이라는 마을공동체 사업을 통해 매일 같이 만나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 종이접기, 독서, 퀼트 등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사업이었다. 집이나 업장의 거리도 100미터 안팎. 모임이 없어도 만나지 않을 수 없는 사이였다. 이렇게 끈끈하게 지속된 마을공동체를 기반으로 이들은 2019년 신당5동을 서울시 도시재생 희망지 선정으로 이끌었고, 올해 활성화지역 선정에도 도전해 ‘쾌거’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들 주민이 도시재생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제가 25년째 이곳에 살고 있는데, 동네 입구라고 할 수 있는 신당역 4번 출구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화가 하나도 없어요. 어둡고 지저분한 골목 역시 항상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던 중 주민센터를 통해 ‘도시재생 희망지사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소나힐 멤버들이 주도해서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면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10년째 통장을 하고 있는 박오순 씨의 이야기다.
골목 축제를 안건으로 자유롭게 토론하는 주민 회의
커뮤니티 공간의 필요성도 이들이 적극적으로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한 이유 중 하나다. 지역 활동을 활발히 하고 싶어도 함께 모일 장소가 부족하다는 것을 오랫동안 느껴왔다. 소나힐 모임에서는 어르신들에게 반찬 전하기 봉사를 해왔는데, 이를 꾸준히 하기 위해서도 함께 음식을 만들 장소가 필요했다. 이처럼 단순한 계기로 시작했지만 사업 추진을 위한 역할은 확실하게 나눴다. 마을문고 자치위원인 도정아 주민은 대표이자 제안서 발표를, 10년간 통장을 해오며 주민센터, 구청과 친밀한 박오순 주민은 예산 계획 및 제안서 작성을 맡았다. 그리고 문윤경, 백영숙 주민은 각각 총무와 계획을 실행하는 활동가 역할을 맡았다.
주민이 자발적으로 이끄는 도시재생
그렇게 힘을 모아 도전한 희망지사업에 선정된 덕분에 현재의 거점 공간이 탄생했다. 그때부터 주민들은 여기서 가죽공예, 뜨개질, 가방 만들기, 봉제 클래스 같은 소규모 프로그램을 열었다. 이 지역에 활성화된 봉제산업과 연계한 프로그램이다. 모두 함께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주민 강사를 초빙해 수업을 진행했다. 한결같이 반응이 뜨거웠다. 코로나19로 인한 모임 인원 제한 때문에 하루에 두 시간대로 나눠서 해야 할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소규모 환경개선사업도 진행했다. 다산어린이공원 앞에 화분을 조성해 주차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했고, 신당역 4번 출구와 구립어린이집 앞을 작은 정원으로 꾸며 주민들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신당5동 도시재생활성화지역 선정의 주역, 문윤경, 박오순, 도정아, 백영숙
“안면만 있었던 동네 사람들을 소규모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니까 서로 대화할 거리가 생겼어요.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의 반응을 그때그때 체감하니 더욱 즐거웠습니다.” 도정아 씨가 지난 희망지사업의 소감을 밝혔다. 딱 한 가지 단점은 자기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빴다는 것. 회의가 일주일에 2번 열린데다 소규모 프로그램까지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인식도 비교적 쉽게 긍정적으로 변했다. 이들은 밴드,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등 SNS 활동을 활발하게 했고, 요일별로 거리로 나가 직접 홍보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조경희 코디네이터는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는 이곳 주민들의 강점을 ‘열정’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중지됐다가 다시 거점 공간을 열었을 때였어요. 주민들이 우리에게 먼저 도시재생 교육을 해달라고 요청하시더라고요. 사업을 직접 계획하고 운영하려면 더 많이 알 필요가 있다면서요. 온라인 교육을 위해 8월에 올린 유튜브 영상 조회수도 의외로 높았습니다.”
더불어 주민센터나 구청의 협력도 굉장히 높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놀랍게도 여전히 이곳 주민센터에서는 주민 대부분의 얼굴을 알아봅니다. 거점 공간이 개소했을 때는 동장님이 화환을 보내주시기도 했고요.” 도시재생사업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협력 구조이다. 마을공동체 사업을 함께해온 주민들과 원활하게 의견을 조율하고, 여기에 구청과 주민센터의 협력까지 더해지니 상승효과가 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도시재생활성화 지역으로 선정되기까지
도시재생활성화지역 선정 심사를 위한 제안서는 여기 모인 주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작성했다. 제안서 발표도 도정아 씨가 나섰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일사천리로 진행된 사업의 든든한 협력자는 코디네이터였다고. 조경희, 류한서, 김진확 코디네이터는 골목길 가꿈, 청소년 미디어, 집수리 등 주민들의 관심이 높은 분야별 분과를 조직해 주민 역량 강화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코디네이터들과 자주 만나면서 차근차근 도시재생에 대한 개념을 배우게 됐어요. 주민들이 많은 의견을 내준 덕분에 편하게 제안서를 만들 수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코디네이터들의 노하우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거예요. 벽화 그리기 같은 사업에서 주민들의 서명이 필요하다는 걸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백영숙 주민 활동가는 코디네이터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렇게 모두가 협력하여 만든 제안서에는 지역 경제와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젊은 층의 유입으로 지역 문화가 살아나게 하는 신당5동 주민들의 열망이 가득 담겼다. 지역 인근의 창작아케이드와 문화재단, 중구 예술문화터 ‘일상’ 등과 연계해 지역 문화 콘텐츠를 발굴하고, 봉제산업을 기반으로 한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것이 이들의 최종 목표다.
도시재생 활성화사업의 본격적인 시행은 내년부터지만 구청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현장지원센터를 위한 60평짜리 공간이 벌써 마련됐다고. 이미 주민들은 새로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치열하게 고민 중이다. 그동안의 노력으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신당5동 도시재생활성화사업. 이들이 기대하는 미래는 무엇일까. 마지막 질문으로 물었다. ‘내가 생각하는 신당5동 도시재생은 무엇인가요?’
“33년간 살고 있는데 교통도 그렇고 참 살기 좋은 동네예요.
내가 사는 동네가 조금 더 예쁘게 변한 모습을 눈으로 보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어요.” - 문윤경 주민
“우리 지역의 변화에 주민 의견이 반영된다는 것이 정말 큰 보람이에요.
우리가 의견을 내고 시간을 투자해 만든 동네인 만큼
자손들까지도 사랑하게 되겠지요.” - 도정아 주민
“재개발을 한다고 어르신들이 외부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 함께 오래오래 즐겁게 살 수 있는 동네가 되길 기대해요.” - 박오순 주민
“나이 들어서도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경로당에는 노인분들만 모여 있잖아요.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공간이 만들어지길 기대해요.” - 백영숙 주민